그을음병, 검은무늬병, 탄저병, 흑반병은 모두 식물 표면에 검은색이나 어두운 병징을 남기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발생 원인, 병징의 형태, 진행 양상, 식물에 미치는 영향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진단할 때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방제 방향을 잘못 잡아 피해가 커질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그을음병과 이들 곰팡이성 병해를 구체적으로 비교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목차
1. 그을음병(Sooty mold)의 진단 포인트
그을음병은 식물 자체가 병원균에 감염된 것이 아니라, 해충의 감로(달콤한 배설물) 위에 곰팡이가 번식하면서 생기는 외부착생성 곰팡이병입니다. 진딧물, 깍지벌레, 가루이 같은 흡즙성 해충이 잎이나 줄기에서 즙을 빨아먹고 감로를 배설하면, 그 끈적한 표면에 곰팡이가 자라 검은 피막을 형성합니다.
- 병징 특징 : 잎, 줄기, 열매 표면에 검은 먼지나 그을음처럼 보이는 곰팡이층이 넓게 퍼집니다. 손으로 문지르면 쉽게 떨어져 나가고, 아래 조직은 멀쩡합니다.
- 피해 양상 : 식물 조직 내부로 침투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조직 파괴는 없습니다. 하지만 잎 표면이 검게 덮여 광합성이 저해되고, 미관이 떨어지며, 다른 병해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발생 조건 : 해충이 많은 곳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해충을 방제하면 감로가 사라지고 곰팡이도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즉, 그을음병은 해충 관리가 곧 병 관리라는 점에서 다른 곰팡이병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2. 검은무늬병(Black spot)의 특징과 진단법
검은무늬병은 Alternaria, Diplocarpon 같은 병원성 곰팡이가 식물 조직 내부로 침투해 발생하는 병입니다. 겉으로는 검은 반점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직 깊숙이까지 병원균이 퍼져 식물 생육에 직접적인 피해를 줍니다.
- 병징 특징 : 초기에는 작은 점처럼 시작하지만 점차 커지면서 중심부가 회색이나 갈색으로 변합니다. 병반 주변에는 노란색 테두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 피해 양상 : 병반은 표면에만 얇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직 깊숙이 침투해 잎이 말라죽거나 조기 낙엽을 유발합니다. 손으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고, 병반 부위는 약해져 구멍이 생기거나 잎 전체가 고사할 수 있습니다.
- 발생 조건 : 장미, 배, 파, 가지 등 다양한 작물에서 발생하며, 습도가 높고 비가 자주 오는 환경에서 잘 번식합니다.
검은무늬병은 그냥 잎 표면이 더러워지는 수준이 아니라, 식물의 생육 자체를 크게 떨어뜨리는 병이라는 점에서 그을음병과 구분됩니다.
3. 탄저병(Anthracnose)과의 차이
탄저병은 Colletotrichum 속 곰팡이에 의해 발생하며, 잎, 줄기, 과실에 움푹 들어간 함몰병반을 만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 병징 특징 : 병반은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나타나고, 중심부가 회색에서 검은색, 갈색으로 변합니다. 병반이 진전되면 과실이나 잎이 썩고 조직이 부드럽게 무너집니다.
- 피해 양상 : 병반이 깊게 파이고, 중앙에 작은 검은 점(분생포자층)이 형성됩니다. 손으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고, 조직 자체가 손상돼 구멍이 나거나 과실이 썩어 떨어집니다.
- 발생 조건 : 고추, 수박, 오이, 사과, 배 등 다양한 작물에서 발생하며, 습도가 높고 비가 잦은 환경에서 급격히 번식합니다.
탄저병은 과실 품질을 크게 떨어뜨리고 상품성을 잃게 만드는 대표적인 병으로, 그을음병과는 피해 양상이 완전히 다릅니다.
4. 흑반병(Black spot, Purple blotch)과의 구분
흑반병은 Alternaria, Diplocarpon 등 곰팡이에 의해 발생하며, 잎이나 과실에 검은색 또는 자색의 반점을 남깁니다.
- 병징 특징 : 병반은 원형 또는 불규칙한 모양으로 나타나며, 중심부가 검고 주변은 노랗거나 자색을 띱니다.
- 피해 양상 : 식물 조직 내부로 침투해 잎이 말라죽거나 과실이 썩습니다. 손으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고, 병이 심해지면 잎 전체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 발생 조건 : 파, 장미, 배, 사과 등에서 흔히 발생하며, 병든 잎이나 과실이 1차 전염원이 되어 다음 해에도 반복적으로 피해를 줍니다.
흑반병은 반복 발생 가능성이 높아 관리가 까다롭고, 그을음병처럼 해충 감로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분됩니다.
5. 실제 진단에서 구별하는 방법
현장에서 식물 병을 진단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을음병, 검은무늬병, 탄저병, 흑반병은 모두 잎이나 과실에 검은색 또는 어두운 병징을 남기기 때문에 초보자는 물론 경험 많은 농업인도 순간적으로 혼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밀하게 관찰하면 몇 가지 뚜렷한 차이를 통해 구별할 수 있습니다.
① 병반의 위치와 성격
- 그을음병은 곰팡이가 식물 조직 내부로 침투하지 않고, 표면에만 얇게 자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병반이라기보다는 검은 먼지나 그을음처럼 덮인 피막 형태로 나타납니다. 손으로 문지르면 쉽게 떨어져 나가고, 아래 조직은 멀쩡합니다.
- 반면 검은무늬병·탄저병·흑반병은 모두 병원성 곰팡이가 조직 내부로 침투해 발생합니다. 따라서 병반 부위의 조직이 약해지고, 잎이 말라죽거나 과실이 썩는 등 직접적인 손상이 나타납니다. 손으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고, 병반이 깊게 자리 잡습니다.
② 해충 감로의 동반 여부
- 그을음병은 반드시 흡즙성 해충의 감로가 동반됩니다. 진딧물, 깍지벌레, 가루이 등이 배설한 끈적한 감로 위에 곰팡이가 자라기 때문에, 그을음병이 발생한 곳을 자세히 보면 잎 뒷면이나 줄기에 해충이 붙어 있거나 감로가 묻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반면 다른 곰팡이병들은 해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습도, 온도, 전염원(병든 잎이나 과실)이 주요 발생 요인입니다. 따라서 해충이 보이지 않는데 검은 병반이 있다면 그을음병보다는 다른 곰팡이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③ 병반의 형태와 색 변화
- 검은무늬병은 원형이나 타원형의 병반이 생기고, 중심부가 회색·갈색으로 변하며 주변에 노란색 테두리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 탄저병은 병반이 움푹 들어가는 함몰 형태로 나타나며, 중앙에 작은 검은 점(분생포자층)이 형성됩니다. 과실에서는 썩으면서 물러지는 양상이 뚜렷합니다.
- 흑반병은 원형 또는 불규칙한 자색·검은색 반점이 생기고, 주변부가 노랗거나 자색을 띱니다. 병든 잎이나 과실이 다음 해에도 전염원이 되어 반복 발생합니다.
- 그을음병은 이런 형태적 특징이 없고, 단순히 표면에 검은 곰팡이층이 넓게 퍼져 있는 모습입니다.
④ 손으로 문질렀을 때의 반응
- 그을음병은 손으로 문지르면 곰팡이층이 쉽게 떨어져 나가고, 아래 조직은 건강합니다.
- 검은무늬병·탄저병·흑반병은 손으로 문질러도 병반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병반 부위가 약해져 구멍이 생기거나 조직이 부서집니다.
⑤ 피해 양상의 차이
- 그을음병은 광합성 저해, 미관 저하, 2차 병해충 유발 같은 간접적인 피해를 줍니다. 식물 조직 자체를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 다른 곰팡이병들은 잎이 말라죽거나 과실이 썩는 등 직접적인 피해를 줍니다. 수확량과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⑥ 발생 환경
- 그을음병은 해충이 많은 곳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합니다. 따라서 해충 방제가 곧 병 방제입니다.
- 검은무늬병·탄저병·흑반병은 습도가 높고 비가 잦은 환경에서 잘 발생합니다. 따라서 환기, 배수, 병든 잎 제거 같은 관리가 중요합니다.
⑦ 실제 진단 절차 예시
현장에서 진단할 때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으면 혼동을 줄일 수 있습니다.
- 먼저 손으로 문질러본다. 쉽게 지워지면 그을음병 가능성이 높다.
- 해충이나 감로가 있는지 확인한다. 해충이 보이면 그을음병, 없으면 다른 곰팡이병 가능성.
- 병반의 형태를 관찰한다. 원형·타원형·함몰·자색 테두리 등 특징을 비교한다.
- 조직 손상 여부를 확인한다. 조직이 썩거나 말라죽으면 곰팡이병, 멀쩡하면 그을음병.
- 발생 환경을 고려한다. 습도가 높고 비가 잦았다면 곰팡이병, 해충이 많았다면 그을음병.
⑧ 사례로 보는 구별 포인트
- 장미 잎에 검은 반점: 손으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고 주변이 노랗게 변한다면 검은무늬병.
- 고추 과실에 움푹 들어간 병반: 중앙에 검은 점이 보이고 과실이 물러진다면 탄저병.
- 배 잎에 자색 반점: 주변이 노랗게 변하고 다음 해에도 반복 발생한다면 흑반병.
- 감귤 잎이 검게 덮임: 해충 감로가 묻어 있고 손으로 문지르면 지워진다면 그을음병.
실제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표면성 곰팡이냐, 조직 침투성 곰팡이냐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을음병은 해충 감로와 함께 나타나는 표면성 곰팡이로, 손으로 문지르면 지워지고 조직은 멀쩡합니다. 반면 검은무늬병, 탄저병, 흑반병은 조직 내부로 침투해 직접적인 손상을 주며, 손으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진단할 때는 손으로 문질러보기, 해충 감로 확인, 병반 형태 관찰, 조직 손상 여부 확인, 발생 환경 고려라는 다섯 가지 기준을 반드시 적용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비슷해 보이는 병들을 명확히 구별할 수 있고, 올바른 방제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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