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딧물(aphid)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해충으로, 5,000종이 넘는 다양한 종이 알려져 있어요. 진딧물의 번식에 있어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생식 전략의 유연성입니다. 진딧물은 환경 조건에 따라 무성생식(단위생식, parthenogenesis)과 유성생식(sexual reproduction)을 자유롭게 오가며 계절에 따라 번식 방식을 바꿔가요. 이런 유연한 번식 전략이 진딧물이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고, 해마다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목차
진딧물의 번식력

진딧물은 식물의 잎, 줄기, 꽃, 뿌리 등 다양한 부위에 서식하며 온대, 아열대, 고산지대, 사막 등 다양한 기후와 환경에 적응해 살아갑니다. 계절과 환경 변화에 따라 색, 크기, 형태, 심지어 번식 방식까지 달라지는 다형성(polyphenism)을 보이는 곤충입니다.
진딧물은 전형적으로 순환 단위생식(cyclical parthenogenesis)을 보입니다. 봄과 여름, 낮이 길고 온도가 높을 때는 암컷이 수컷 없이도 새끼를 낳는 무성생식(단위생식, viviparous parthenogenesis)으로 개체 수를 빠르게 늘려요. 이때 태어나는 새끼들은 대부분 암컷이고, 태어나자마자 바로 번식이 가능합니다. 한 마리 암컷이 일생 동안 낳는 새끼 수는 수십~수백 마리에 달할 수 있고, 한 해에 10~30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어요.
가을이 되어 낮이 짧아지고 온도가 떨어지면, 진딧물의 번식 전략은 유성생식 모드로 전환합니다. 이때 암컷은 수컷과 짝짓기를 하고, 서리와 추위에 견디는 휴면 알(diapause egg)을 낳아요. 이 알은 겨울을 견디고, 이듬해 봄에 부화해 다시 무성생식 세대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진딧물의 번식 전략은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유전적 다양성도 확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일부 진딧물 종은 일 년 내내 무성생식만 하는 완전 단위생식(obligate parthenogenesis)을 보이기도 해요.
날개 달린 진딧물의 이동성
진딧물은 같은 유전자를 가진 개체라도, 밀도, 먹이 부족, 천적 존재 등 환경 속 다양한 요소에 따라 날개가 있는 개체와 날개 없는 개체로 나뉘어 태어날 수 있습니다. 밀도가 높아지거나 먹이가 부족해지면, 어미 진딧물은 날개 달린 새끼를 많이 낳아요. 이 날개 달린 진딧물은 바람을 타고 수십 미터에서 수 킬로미터까지 이동해 새로운 식물로 퍼집니다. 날개 발생에는 환경 신호가 어미의 호르몬(juvenile hormone 등)에 의해 조절되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이런 날개 다형성 덕분에 진딧물은 한 곳에서 피해가 발생하면 금세 주변 식물이나 온실, 밭 등으로 확산됩니다. 날개 달린 진딧물은 새로운 숙주 식물을 찾아가 번식을 시작하고, 그곳에서 다시 날개 없는 개체가 대량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진딧물의 생애주기와 세대 교체
진딧물의 생애주기는 매우 짧아요. 알에서 부화한 유충은 3~4번 탈피 후 성충이 되고, 성충이 되자마자 바로 번식을 시작합니다. 온도와 먹이 조건이 좋으면 한 세대가 일주일 만에 완성될 수 있고, 한 해에 수십 세대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빠른 세대 교체는 진딧물 개체군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원인이 됩니다.
특히 진딧물은 ‘생산성 높은 모계 라인’을 유지합니다. 봄에 부화하는 기주모(stem mother)는 무성생식으로 딸을 낳고, 이 딸들도 바로 무성생식을 시작해 연쇄적으로 개체 수가 늘어납니다. 가을에는 유성생식 세대가 나타나 번식 전략이 바뀌고, 휴면 알로 겨울을 나게 됩니다.
진딧물이 식물에 입히는 피해
1. 직접적인 흡즙 피해
진딧물은 식물의 잎, 줄기, 꽃, 뿌리 등에 침 모양의 입을 찔러 넣고 식물의 체액(즙액, phloem sap)을 빨아먹어요. 이 과정에서 식물 세포가 손상되고, 영양분이 빠져나가면서 잎이 오그라들거나 변색되고, 새순이 자라지 않거나 꽃이 시드는 등 생장 장애가 나타납니다. 어린 식물이나 연한 잎은 특히 진딧물의 집중 공격을 받아 성장 자체가 멈추거나 기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진딧물은 한 번에 수백 마리가 떼로 붙어서 즙을 빨기 때문에, 피해가 눈에 띄지 않게 시작해도 어느 순간 식물 전체가 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심한 경우 잎이 노랗게 변하거나 말라 떨어지고, 식물 전체가 시들거나 고사하는 일도 드물지 않아요.
2. 감로와 2차 피해
진딧물은 식물의 즙액을 먹으면서 많은 양의 감로(honeydew, 당분이 많은 배설물)를 남깁니다. 이 감로는 잎과 줄기 표면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곰팡이성 질병인 그을음병(sooty mold)을 유발합니다. 그을음병이 생긴 잎은 검게 변하고 광합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식물의 영양 상태가 더 나빠집니다.
감로는 또 다른 곤충, 특히 개미를 유인해 진딧물과 개미가 공생 관계를 맺게 됩니다. 개미는 감로를 먹는 대신 진딧물을 보호해주고, 천적의 접근을 막아주기 때문에 진딧물 개체군이 더 빠르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감로와 그을음병, 개미와의 공생은 진딧물 피해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3. 바이러스 매개체 역할
진딧물은 단순히 즙을 빨아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식물 바이러스의 주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진딧물이 감염된 식물을 흡즙할 때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고, 이후 건강한 식물을 빨아먹으면서 바이러스를 옮깁니다. 오이모자이크바이러스, 토마토반점위조바이러스, 감자Y바이러스 등 다양한 식물병이 진딧물에 의해 전파됩니다.
이런 바이러스성 질병은 식물의 성장 저하, 잎의 기형, 열매의 변형, 수확량 감소 등 2차 피해를 일으킵니다. 특히 바이러스에 감염된 식물은 방제가 어렵고, 한 번 감염되면 회복이 힘들어 상품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진딧물이 많은 곳에서는 바이러스 피해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에, 초기에 진딧물 개체 수를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진딧물 방제의 어려움과 저항성 문제
진딧물은 번식력이 워낙 뛰어나고, 다양한 생존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에 방제가 쉽지 않습니다. 농약에 대한 내성도 빠르게 생기는데, 한 세대가 짧고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져서 기존 약제에 잘 죽지 않는 개체가 금방 늘어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진딧물 방제에 쓰이던 농약에 내성을 가진 개체군이 늘어나 농가에 큰 고민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진딧물은 종류가 다양해, 같은 약제라도 종마다 효과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약제 선택을 잘못하면 방제 효과가 떨어지고, 오히려 내성만 키울 수 있습니다. 친환경 농법이나 천적 곤충을 활용한 생물학적 방제, 작물 혼식 등 다양한 방법을 병행해야 효과적으로 진딧물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진딧물 방제는 무엇보다도 조기 발견과 신속한 대응이 중요합니다. 정기적으로 잎 뒷면, 새순, 꽃봉오리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진딧물이 보이면 즉시 손으로 제거하거나 물로 씻어내는 것이 기본이에요. 식물의 밀식이나 통풍 불량, 과도한 비료 사용 등 진딧물이 좋아하는 환경을 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천적 곤충(무당벌레, 꽃노랑총채벌레 등)을 활용하거나, 친환경 방제제(비눗물, 오일 스프레이 등)를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농약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권장량과 사용법을 지켜야 하며, 약제 종류를 주기적으로 바꿔 쓰는 것이 내성 발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진딧물 피해가 심한 식물은 신속히 격리해 확산을 막아야 합니다.
참고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3900772/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1631069110001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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