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숲에서 한 그루, 두 그루씩 나무가 갑자기 시들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마른 잎과 죽어가는 가지를 보면 가뭄이나 해충을 의심하기 쉽지만, 이 모든 것의 뒤에는 리지나 뿌리썩음병(Rhizina root rot)이라는 무서운 병이 숨어 있습니다. 산불이나 모닥불 자리에서 시작되어 나무 뿌리를 서서히 갉아먹으며, 한 번 번지면 수년간 같은 자리에서 나무를 집단으로 고사시키는 특징이 있습니다. 소나무 재선충병과 증상이 비슷해 초기 진단이 어렵지만, 방치하면 산림 전체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리지나 뿌리썩음병은 파상땅해파리버섯(리지나 운둘라타, Rhizina undulata)이라는 곰팡이가 일으키며, 고온의 토양 환경에서 활발히 번식합니다. 캠핑객의 모닥불, 산불, 쓰레기 소각 등이 주요 발병 원인으로 꼽히는데, 최근에는 레저 활동 증가로 인해 피해 지역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목차
1. 원인균인 파상땅해파리버섯의 생태

리지나 뿌리썩음병의 원인균인 파상땅해파리버섯은 자낭균류에 속하는 토양 병원균입니다. 이 곰팡이는 불에 타서 고온이 가해진 토양에서 포자가 발아하며, 뿌리를 통해 나무에 침투합니다. 포자는 40~60℃의 고온에서 활성화되기 때문에 산불이나 인위적 화재가 발생한 지역에서 주로 번성합니다. 일단 발아하면 균사가 땅속에서 연간 5~7m씩 뻗어 나가며 주변 나무의 뿌리를 감염시킵니다.
리지나 뿌리썩음병의 병원균은 나무가 죽은 후에도 뿌리나 그루터기에 수십 년간 잠복할 수 있어 재감염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습한 날씨가 이어지면, 감염된 나무 밑동에서 붉은색~갈색의 불규칙한 버섯이 무리 지어 자라는데, 이는 병의 진행을 알리는 뚜렷한 신호입니다.
2. 증상과 진단
지상부의 변화
감염 초기에는 나무 전체의 생장이 둔화되고, 침엽이 누렇게 변하다가 갈색으로 마릅니다. 특히 소나무의 경우 바늘잎이 떨어지지 않고 말라붙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상층부 가지부터 말라 내려오는 가지마름(dieback) 현상이 나타나며, 심하면 수관 전체가 고사합니다. 이러한 증상은 가뭄이나 재선충병과 유사해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지하부의 변화
뿌리와 밑동(근주)을 살펴보면 껍질 아래에 하얀 균사층이 형성되고, 뿌리 조직이 검게 썩어 물러집니다. 땅속에서는 검은색 신발끈 모양의 라이조모프(rhizomorph)가 다른 뿌리로 뻗어가며 감염을 확산시킵니다. 병든 나무를 뽑아보면 뿌리가 심하게 손상되어 흙덩이와 함께 끊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3. 감염 경로
리지나 뿌리썩음병은 화재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산불이나 모닥불로 인해 토양 표면 온도가 일시적으로 40℃ 이상 올라가면, 휴면 상태의 포자가 깨어나 발아합니다. 발아한 균사는 불에 타지 않은 뿌리나 새로 심은 묘목을 공격하며, 20℃ 전후의 온도에서 가장 활발히 번식합니다. 특히 산성 토양이나 미생물이 적은 모래땅에서 피해가 심한데, 경주 남산이나 동해안 소나무림에서 집단 고사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감염된 뿌리와 건강한 뿌리가 접촉하면 병이 직접 전파되며, 버섯에서 발생한 포자가 바람을 타고 인근 지역으로 퍼질 수도 있습니다. 한 번 발병한 지역은 최소 5년간 재감염 위험이 높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주로 소나무, 곰솔, 해송 등 침엽수가 감염되지만, 전나무, 낙엽송, 잣나무에서도 피해 사례가 보고됩니다. 활엽수 중에서는 참나무나 자작나무가 취약하며, 과수원의 사과나무, 배나무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묘목이나 이식 직후의 어린 나무는 뿌리가 약해 감염에 취약합니다.
4. 관리 전략 (예방이 최선의 치료)
리지나 뿌리썩음병은 한 번 번지면 통제하기 어려운 만큼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산불 방지, 모닥불 금지, 산성 토양 개선 등 기본적인 관리만으로도 발병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나무가 시들기 시작하면 즉시 뿌리 상태를 확인하고, 감염이 의심될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소나무 숲의 건강은 단순히 나무를 지키는 것을 넘어, 산림 생태계와 인간의 안전까지 좌우합니다.
1) 화재 예방과 사후 조치
산불이나 모닥불을 절대 허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불이 난 지역에는 즉시 석회를 뿌려 토양 산도를 중화시키고, 감염된 나무와 그루터기를 완전히 제거한 뒤 소각합니다. 재식림 전 최소 1~2년간 토양 상태를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2) 물리적 차단
감염된 나무 주변에 깊이 80cm, 너비 1m의 도랑을 파고 석회를 혼합한 흙으로 메워 병원균의 확산을 막습니다. 이 방법은 균사의 수평 이동을 차단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3) 화학적 방제
발병 초기에는 메타락실, 아족시스트로빈 계열 살균제를 뿌리 관주로 적용할 수 있지만, 고사가 진행된 나무에는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최근 남아프리카에서는 디에토펜카브와 카벤다짐의 혼합제 사용이 실험 중입니다.
4) 저항성 품종 및 윤작
소나무 대신 리기다소나무나 레이랜드사이프러스 등 저항성이 강한 수종을 심거나, 5~10년 주기로 침엽수와 활엽수를 윤작합니다.
5. 국내외 사례
국내외에서 다양한 피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고성, 강릉, 경주 남산 등에서 산불 이후 소나무와 곰솔이 집단 고사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관찰되고 있습니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토양 온도가 40℃ 이상으로 급상승하면서, 평소에는 휴면 상태로 있던 파상땅해파리버섯 포자가 깨어나 발아하게 됩니다. 이때 토양 내 다른 미생물들은 고온에 의해 대부분 사멸하고, 리지나 병원균만이 남아 무주공산(無主空山)에서 빠르게 번식합니다. 이 과정에서 소나무, 곰솔, 일본잎갈나무 등의 뿌리가 감염되어, 한 해 혹은 그 이듬해에 집단적으로 시들고 고사하는 피해가 나타납니다. 실제로 산불이 난 지역에서 소나무를 재조림할 경우, 토양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리지나 뿌리썩음병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산림 복원이 어렵다는 점이 여러 차례 확인되었습니다.
이 병의 피해는 단순히 한두 그루의 나무에 국한되지 않고, 수십~수백 그루의 나무가 한꺼번에 말라죽는 집단 고사로 이어집니다. 1981년 경주 남산에서 모닥불 자리를 중심으로 소나무와 곰솔이 대규모로 고사한 사례가 처음 보고된 이후, 동해안의 모래땅 소나무림, 설악산, 변산반도 등에서도 유사한 집단 피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송이버섯 산지처럼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재조림하는 지역에서는 산불 이후 리지나 뿌리썩음병이 더욱 쉽게 확산됩니다. 피해 중심지는 수년간 병원균이 잔존해, 새로 심은 나무도 연이어 감염되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불 피해지에서 소나무를 재조림하기 전, 반드시 토양 미생물 복원 상태를 확인하고, 미생물 회복이 이루어질 때까지 조림을 미루는 것이 피해 최소화에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국외에서도 리지나 뿌리썩음병은 산불과 밀접하게 연관된 대표적 토양 병해로 꼽힙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상업적 조림지에서 집단 고사가 빈번히 발생해, 산불 이후 잔재물 소각을 금지하고, 모니터링 플롯을 설치해 재식림 시기를 조절하는 등 관리 전략을 도입했습니다. 이 결과 피해를 70% 이상 줄인 성공 사례가 있습니다. 유럽과 북미의 일부 소나무와 전나무 조림지에서도 산불 이후 리지나뿌리썩음병이 확산되어, 산림 복원 정책에 ‘토양 휴식기’와 ‘미생물 복원’이 필수 단계로 포함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산불 이후 최소 2~3년간 토양 상태를 관찰하고, 감염 위험이 낮아진 시점에만 나무를 다시 심는 방식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한편 최근에는 산불이 발생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리지나 뿌리썩음병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2020년 경기도 의왕시 낙엽송 조림지에서, 발화 행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이 발생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여름철 이상고온 현상으로 모래 토양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 병원균이 발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처럼 최근 기후변화와 이상기온이 병원균의 활성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산림청은 이러한 이례적 발병 사례를 계기로, 피해 지역의 기후 변화와 토양 온도, 미생물 다양성 등을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리지나 뿌리썩음병은 현재까지 효과적인 방제 약제가 개발되지 않았기에 감염된 나무를 제거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만큼 산불 이후에는 조기 예찰과 토양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산불 피해지에서 불씨가 완전히 꺼졌는지, 토양 미생물이 회복되고 있는지, 버섯 무리가 나타나지 않는지 꼼꼼히 점검해야 합니다. 산림청은 불이 난 지역의 소나무 조림 시기를 명확히 조절하고, 불씨 관리와 더불어 미생물 복원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참고
https://www.fabinet.up.ac.za/src.fabinet.up.ac.za/tpcp/pamphlets/rhizina.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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